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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2. 17:53

고전을 읽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적절히 확보해야 하고, 서사적 구조나 문체도 현대물과는 달라서 읽기에 적응하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그래서 고전 읽기는 퇴직 이후로 미뤄두었다. 창비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함께 읽기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이 책은 예정대로 퇴직 이후에나 읽게 되었을 것이다. 퇴직 이후 고전읽기 1순위에 있는 작품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솔깃한 유혹이었다. 좋은 작품을 읽는 데 퇴직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나? 이 참에 한 번 도전해 보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1-2-3권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1권을 읽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책 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은 이름과 인물의 관계도. 백지를 꺼내놓고, 인물들간의 관계를 선으로 그리며 읽었다. 처음에는 조금 허덕거렸으나, 100페이지가 넘어가자 슬슬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1권에서는 마지막 부분의 대심문관 챕터를 흥미롭게 읽었다. 전반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 '이반'의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이반'의 주장이 후반부에 어떻게 전개되고, 어떻게 수용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2권은 '드미뜨리'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열정적인 '드미뜨리'의 성격 자체가 문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작품 전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인물인 아버지, '표도르  빠블로비치 까라마조프'의 죽음 전후의 이야기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권보다는 2권이 훨씬 흥미진진했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어 3권은 아직 읽지 않고 있다. 대 장정의 완결편이라서 기대가 크다. 조금씩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이 글을 마저 완성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3권을 마저 읽었다. 드리뜨리가 부친 살해범으로 기소되고 법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다 읽고 떠오는 단어는 말 그대로 '대 서사시'. 한마디로 품위없고 찌질한 아버지의 세 아들. 첫째 드리뜨리는 다혈질에다 열정만 넘치는 인간형이고 둘째 이반은 이성적이라고는 하나 다 읽고 난 바로는 이성적인 측면이 그다지 부각되지는 않다고 느꼈다. 1권 마지막의 대심문관 부분이 난해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셋째, 알료사는 성스로운 그 어떤 것을 가리키는 인물로 형상화되었다고 하는데, 일차적으로는 순수의 전형처럼 보였다. 얼핏 나약해 보이나 나약하지 않은 인물. 사람들이 스스로 존중하는 인물. 성스러운 어떤 기운을 품어내고 있어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 말과 행동에 신뢰가 얹혀진 인물. 알료사는 까라마조프가의 다른 인물들과 대비되어서 이 긴 서사를 갈래마다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듯 이 작품이 지금까지 읽은 최고의 작품이라거나 인생책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분량이 일단, 너무 많아서 읽어내는 데 힘들기도 했고 서사적 구조에서 어떤 숨겨진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생각하다보니 뭔가 지루한 느낌도 컸다. 고전은 역시 시간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한 번 후루룩 읽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더 다른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생각해 보지만 글쎄 .현재는 완독했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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