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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6. 21:22

뭔가, 이 책은... 에세이도 아니고, 달팽이 생물 도감도 아니고. 프롤로그를 지나면 바로 달팽이의 생태를 설명하는 글들이 끝까지 이어진다. 나는 달팽이에 관심도 없고, 그래서 달팽이의 생태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래도 계속 읽었다. 이유는 달팽이가 아닌 저자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름모를 바이스러에 감염되어 꼼짝없이 누워만 있어야 하는 베일리가 하루하루 달팽이를 관찰하면서 어떻게 삶을 견뎌내고? 살아내고? 있는지...달팽이 보다는 그녀가 궁금했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그녀는 조용히 고백한다.

우리 달팽이는 내 영혼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우리 둘은 온전히 하나의 사회를 이루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고립감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다. 달팽이가 사라지자 날이 저무는 것 처럼 내게는 더 이상 기댈 희망이 없었다.(152). 

솔직히 말해서 그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다른 생명체를 관찰하는 것은 그것의 삶을 돌아보는 일입니다.(175).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181).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고 싶지 않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달팽이와 베일리의 저 뻔한 관계말고, 삶의 깊은 곳에 한 발 들어갈 수 있는 뭔가가 이 책에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머리가 복잡해, 오늘은 생각하지 싫다. 다음에 이어서 쓸 수 있으면 또 쓰자.

이 책의 중요한 지점은 책 후반부의 저 문장들이 아니다. 달팽이를 관찰한 하루하루의 날들이다. 달팽이가 무엇을 먹는지 궁금해 하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염려하고,  그러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의 결과 관심의 질이 핵심이다. 어쩌면 그 마음이 달팽이에게 닿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는.   

 

 

<달팽이...안단테>,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김병순, 돌베개, 2011초판-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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