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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16. 18:00

제목이,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책읽아웃> 엄지혜님의 소개를 듣고 선택했다--<책읽아웃>에서 소개한 책은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였다. 처음 듣는 작가를 만나면 그의 전작을 먼저 읽는 습관 때문에 「나를 견디는 시간」을 먼저 집어 들었다. 몇몇 유명인들의 에세이에 실망을 거듭하고 있던 참이라서(easy-reading한 에세이가 지겹기도 했고) 에세이를 그만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단, 엄지혜님의 안목에 감탄했고, 이윤주라는 만만치 않은 작가를 만난 것이 반가웠다.

서문에 '너의 글을 읽으면 나도 뭔가 쓰고 싶어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는데 같은 마음이었다.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그런 행위를 통해 조금씩 원하는 삶으로 나가는 힘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종종 '정확하게 쓴다'는 말을 떠올리는데 저자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다(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들은 말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확하게 쓴다는 것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쓰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태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와 노력과 끈기와 치밀함이 필요하고, 그렇게 찾아낸 실체를 끌어올릴 나의 언어가 필요하다. 글쓰기가 치유일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기도하는 시간이 소중한 건 내가 무얼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심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애먼 사람을 괴롭혔는지도 그제서야 알 수 있다. 쫒고 쫒기고 몰고 몰리고, 울고 울리고, 긁고 긁히는 미로 속 어디쯤에 있었는지 나는 기도 속에서 가늠한다(63-64).

기도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건, 기도 행위가 아니라 '기도하는 나'를 성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기도하는 시간은 복을 기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안심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불안을 잠재우지 않으면 야만이 되니까. 저자가 말하는 불안과 두려움은 아마도 내가 종종 느끼는 '세상에 진 것 같은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안간힘을 써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시기가 그 시기이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불안하지 않기 위해. 안심하기 위해.   

다만 나는 세상 어느 나라 어느 집단에서 살든 모든 인간에게는 '존재'로서 타고난 불행이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사회적 폭력과 무관한, 태어남 자체로 얽힌 고통. 어떤 종교에서는 그래서 삶이 苦海라 하고, 또 다른 종교에서는 모든 인간이 原罪를 갖고 태어난다고 하는 걸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폄화될 수 없다. 바꿔말하면 '존재'로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어른의 덕목이기도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만 낙원 그 비슷한 길을 낼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69-71)

'노력'이라는 고대의 유물 같은 단어를 이렇게 새롭게 만든다.

모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가능하면,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외워야 한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모르니까 설명해주고, 초면인 것 처럼 경청하라(77).

설명하고 경청하라. 왜 모르냐고 원망하는 대신.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목이 '가족이 지옥이 될 때'. 제목부터 피해가는 법이 없다. 이 사람은.

나는 고통에 실체를 입히려고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언어로 바꾸면,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면, 대책이(상대적으로) 보인다.(124)

공감.

아픈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정확히는, 아픈데 내가 아픈 것을 아는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아픈데, 아픈 채 죽고 싶지 않는 사람. 속물인데, 속물로 죽고 싶지는 않은 사람. 그러니까 저절로 훌륭하게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싶고, 그때 책의 힘을 빌리 수 있다는 걸 한두 번은 경험해본 사람.(144)

나의 경험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온 세상의 비극을 겪을 수 없어서 문학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167)

동병상련은 진짜 동병에만 상련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어머, 저건 딱 내 얘기야!'라고 인지하는 데는 어떤 품도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어떤 품도 들지 않는 일은 자신을 조금도 '낫게'하지 않습니다. 꼰대는 모름지기 '나아려지려는' 사람이니까요.(184)

베스트셀러를 잘 읽지 않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적은 글인데 '공감을 의심하다'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품이 들지 않는 책읽기로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었다. 나의 지금 상태가 정확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그때의 생각을 이렇게 지지해 주는 책을 만나는구나. 일상의 이런 발견이 반갑고 좋다.

이 책은 두번 읽을 때 그 의미가 더 정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품위있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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