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
한 때 김영민(서울대 교수 말고)의 글은 내 정신의 어느 한 부분을 형성했다. 김영민의 초기 저작들인 <철학과 상상력>,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철학으로 영화보기 영화로 철학하기>, <컨텍스트로 패턴으로> 같은 책들이 책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동무와 연인>, <공무론> 등을 사들이긴 했으나 성실하게 읽어내지는 못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공부 경력의 단절이 원인이었으려나. 공부에 심드렁해진 시기였을 것이다. 수차례 쌓아 둔 책을 정리하는 동안 그의 책들도 책장에서 사라졌다.
동명으로 그보다는 읽어내기 편한 글을 쓰는 서울대 교수 김영민의 책을 섭렵하면서 김영민에 대한 향수가 떠올랐으나 그의 책을 다시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의 책을 다시 읽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거였다. 그러다가 그의 최근작을 보게 되었다. 책 소개에 박문호, 유시민, 정희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아니, 이런 인물평도 하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조각난 지혜로 세상을 마주하다>를 담았다.
그러면 그렇지. 총 10장으로 구성된 강연집은 몇 장을 제외하고는 읽는데 힘이 달렸다. 그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단어나 개념이 낯설기도 했고, 그래선지 거슬리는 표현도 있었다.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문장(단)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난 첫 느낌은 '아, 이사람은 공부로 道의 경지에 도달했구나'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공부는 道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세속의 평가나 비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형성한 觀으로 세상에 대해 말하는 글. 아주 오래 전 조금은 흥분된 상태로 그의 책을 읽던 마음이 떠올랐다. 나의 말과 글을 갖고 싶어 안달하던 시절과 함께.
책을 읽는 행위가 중요한 일과가 된 지금, 김영민과의 재회는 공부에 조금 더 힘을 내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의 책을 옛날처럼 흥분에 들떠 탐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지금 보다는 조금 더 심각하게 읽고 쓰는 일을 해보라는 격려가 되었다.
반면 공부길이 희망하는 구제에는 세일이 없다. 대리代理도 연좌連坐도 없어, 오직 개인의 실존적 개별성이 한 걸음 한 걸음 제 몸으로 온전히 나아가면서 스스로 얻어내야 한다. 세일만 없는 게 아니라 인생과 존재에 관한 개인 학인의 식견은 늘 조각조각 부분적이며, 제 비용을 요구하고, 심지어 구원에 대한 '약속'조차 하지 않는다. 59
정신에는 따로 길이 없다. 그러므로 특별히 개념의 길, 글의 길로써 정신 속의 갖은 길을 닦고 잇고 융통하는 것이다. 산속의 좁은 자드락길은 자주 걷고 가꾸지 않으면 곧 소실된다. 마찬가지로 사실에 바탕한 정확한 기억을 쟁여가고, 그 기억을 활용해서 글이 이어지지 않으면 정신 속의 길 역시 소실되고 만다. 80
정신은 표현을 통해 나아가고, 표현은 정신을 통해 가장 정교해지는 법이니, 공부하려는 사람아, 언제나 네 표현에 소심하고 조심하며 또한 견결하여라. 180.
공부는, 뭐니뭐니 해도 글인 것이다. 214
